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 기억 안 난다. 어느 날부터 폰을 꺼내는 빈도가 늘었다. 특별한 것을 찍지는 않는다. 밥 먹기 전에 찍고 길 가다가 찍고 창밖을 찍는다. 찍고 나서 잘 안 본다. 앨범에 쌓인다. 가끔 스크롤을 내리다가 몇 달 전 사진이 나오면 잠깐 본다. 이걸 왜 찍었지 싶은 것들이 있다. 근데 찍지 않았으면 기억하지 못했을 것들이기도 하다. 찍었으니까 있다. 찍지 않았으면 없었을 것들.
수잔 손택이 ‘사진에 관하여’를 쓴 건 1977년이다. 사진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이다. 지금은 하루에 찍히는 사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손택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이 책을 어떻게 썼을지 모르겠다. 아마 훨씬 두꺼웠을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못 썼을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많아서. 사진이 너무 많으면 사진에 대해 생각하기가 어렵다. 물이 너무 많으면 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손택은 사진을 찍는다는 게 세계를 소유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찍으면 갖게 된다는 것. 읽으면서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찍는다고 갖게 되는 건지. 갖게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지. 여행지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나중에 그 장소가 잘 기억 안 나는 경우가 있다. 찍었는데 없다. 사진은 있는데 기억이 없다. 소유한 것 같은데 소유하지 못한 것. 손택의 말이 맞으면서 틀린 것 같았다.
‘엘리펀트’의 엘리가 뷰파인더로 세계를 보는 장면이 생각났다. 찍는다는 게 붙잡으려는 것인지 거리를 두려는 것인지. 손택도 비슷한 말을 한다. 카메라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고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고. 거기 있으면서 거기 없는 것처럼 있을 수 있게 해준다고. 그게 위안인지 문제인지는 손택도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둘 다라는 것 같다. 카메라가 있으면 더 잘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카메라가 있으면 못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서 제일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사진이 현실을 대체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진을 너무 많이 보면 현실보다 사진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것. 어떤 장소에 가기 전에 이미 그 장소의 사진을 수백 장 본다. 가서 보면 사진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기준이 된다. 현실이 사진을 따라가는 것처럼 된다. 그게 1977년에도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훨씬 심해진 일이다. 손택이 그걸 알았을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아무도 없는 시간에 듣는 것’을 쓰면서 이름을 알고 나서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했는데 사진도 그런 것 같다. 찍고 나서야 봤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있다. 찍기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 카메라가 보게 만드는 것들. 손택은 그게 문제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렇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손택은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 이렇다고 보여줬을 뿐이다. 판단은 읽는 사람이 하는 거였다.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사진을 덜 찍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됐다. 꺼내려다가 그냥 보는 경우가 생겼다. 찍지 않고 보는 것. 그러면 나중에 기억 안 날 것이다. 기억 안 나도 괜찮은 것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지금도 찍는다. 많이 찍는다. 손택을 읽었는데도 그렇다. 읽었다고 달라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달라지는 건지 모르게 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