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


페데리코 펠리니 ‘8과 2분의 1’

구이도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근데 못 만든다.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스태프가 기다리고 제작자가 재촉하고 배우들이 물어보는데 구이도는 대답이 없다. 온천에서 요양을 하면서 생각하려고 하는데 생각이 안 난다. 꿈을 꾼다. 과거가 온다. 여자들이 온다. 현재와 과거와 꿈이 섞인다. 펠리니는 그 섞임을 그냥 보여준다. 정리하지 않는다. 관객도 구이도처럼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영화 안에 있게 된다.

이 영화가 뭐에 대한 영화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창작자의 슬럼프에 대한 영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남자의 자기중심성에 대한 영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펠리니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다 맞는 것 같다. 하나만 맞는 영화가 아닌 것 같다. 여러 개가 동시에 맞는 영화. 그게 이 영화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인 것 같다. 읽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서.

구이도의 어린 시절 장면이 나온다. 포도주 통 안에서 씻긴다. 침대에 눕혀진다. 여자들이 노래를 부른다. 그 장면이 꿈처럼 보이는데 기억인지 꿈인지 구분이 안 된다. 펠리니는 그 구분을 하지 않는다. 기억과 꿈이 같은 질감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이 그런 것 같다. 기억인지 꿈인지 모르는 것들. 실제로 있었는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는 것들. 구이도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나온다. 그래서 더 어린 시절처럼 보인다.

사라기나라는 여자가 나온다. 해변에 사는 여자다. 구이도가 어렸을 때 돈을 주고 룸바를 추게 했다. 그 기억이 구이도한테 남아 있다. 신부님한테 들켜서 혼났는데도 남아 있다. 사라기나가 춤추는 장면이 영화에서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해변에서 혼자 춤을 춘다. 크고 느리고 무겁게.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있다는 것. 그게 구이도한테 남은 거라는 것. ‘아무도 없는 시간에 듣는 것’을 쓰면서 이름을 알고 나서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했는데 사라기나는 반대다. 이름도 이유도 없이 남는 것들이 있다. 그냥 남는다.

영화 8과 1/2 스틸컷

구이도 주변에 여자들이 많다. 아내가 있고 정부가 있고 뮤즈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사라기나가 있다. 구이도는 이 여자들을 다 원하면서 다 감당하지 못한다. 이 영화를 남성 판타지라고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근데 그게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구이도는 여자들을 소유하려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 같다. 이해 못 하면서 계속 이해하려는 것.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영화도 그걸 모르는 것 같다. 구이도도 모르는 것 같다.

클라우디아라는 여자가 나온다. 구이도의 뮤즈다. 영화 안에서 실제 배우로도 나오고 구이도의 상상 안에서도 나온다. 상상 속의 클라우디아는 구이도한테 뭘 원하냐고 묻는다. 구이도는 대답을 못 한다. 뭘 원하는지 모른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다. 만들려는 사람이 뭘 만들고 싶은지 모르는 것. 원하는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는 것. 알 수 없는데 계속 원하는 것.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에서 토카르축의 인물들이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구이도도 목적 없이 만들려고 한다. 만들지 못하면서 만들려고 한다. 그게 이 영화가 완성된 이유인지도 모른다.

영화 마지막에 구이도가 다 포기하기로 한다. 영화를 안 만들기로 한다. 제작자한테 말한다. 기자회견장에 총을 가져간다. 자기 머리에 겨눈다. 그리고 갑자기 달라진다. 어린 시절의 사람들이 다 나온다. 어른이 된 구이도도 있다. 다 같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음악이 흐른다. 그게 영화의 끝이다. 화해인지 도피인지 모르겠다. 펠리니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춤을 추게 한다. 관객은 그 춤을 보면서 뭔가를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거나 한다. 느끼지 못해도 괜찮은 것 같다. 이 영화는 이해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만들고 싶은지는 몰랐다. 그냥 만들고 싶었다. 구이도처럼. 뭔지 모르는데 원하는 것. 그 감각이 이상하게 좋았다. 뭔지 모른다는 게 나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면서 계속 원하는 것. 그게 만드는 사람이 사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펠리니가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뭔지 모르면서 계속 만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왔다.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