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몸보다 먼저 온다


니나 시몬 ‘I Put a Spell on You’

니나 시몬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이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그냥 틀어져 있던 음악이었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나는 다른 걸 하고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 하던 걸 멈추게 됐다. 목소리 때문이었다. 무슨 목소리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낮고 거칠고 부드럽고 날카롭다. 이 형용사들이 동시에 맞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니나 시몬이었다. ‘I Put a Spell on You’였다.

이 곡을 처음 발표한 건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라는 뮤지션이다. 1956년이다. 원곡은 호러에 가깝다. 목소리가 말 그대로 비명을 지른다. 주술을 건다는 가사가 실제로 주술처럼 들린다. 니나 시몬이 이 곡을 다시 불렀을 때 완전히 달라졌다. 비명이 사라졌다. 대신 뭔가 다른 것이 들어왔다. 비명보다 더 무서운 것. 확신. 나는 너에게 주문을 걸었다고 니나 시몬은 말한다. 소리치지 않는다. 그냥 말한다. 그게 더 무섭다. 소리치는 사람은 설득하려는 사람이고 그냥 말하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니나 시몬은 이미 알고 있다.

목소리에 대해 생각한다. 목소리는 몸에서 나오는데 몸보다 앞서는 경우가 있다. 몸이 도착하기 전에 목소리가 먼저 온다. 니나 시몬의 목소리가 그렇다. 곡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 목소리가 공간을 점령한다. 첫 음절이 나오면 다른 것들이 물러난다. 그게 카리스마라는 건지 아니면 다른 말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카리스마라는 말이 너무 일반적인 것 같다.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더 구체적인 무언가다. 말로 하면 줄어드는 무언가.

‘I Put a Spell on You’의 가사는 단순하다. 나는 너에게 주문을 걸었다. 왜냐하면 너는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근데 니나 시몬이 부르면 단순하지 않다. 같은 가사가 반복될 때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선언이다. 두 번째에는 확인이다. 세 번째에는 경고다. 네 번째에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보고다. 가사는 변하지 않는데 목소리가 변한다. 아주 조금씩. 그 조금이 모여서 이 곡의 전부가 된다. 말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에서 멘델스존이 같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다르게 들린다고 했는데 니나 시몬은 같은 곡 안에서 이미 그 변화를 만든다. 한 번 듣는 동안에도 여러 번 듣는 것처럼 된다.

니나 시몬은 피아노를 친다. 이 곡에서도 그렇다. 노래하면서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와 목소리가 같은 몸에서 나오는데 둘이 대화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피아노가 뭔가를 말하면 목소리가 받아서 다른 방향으로 가고 목소리가 뭔가를 말하면 피아노가 그 아래에서 받쳐준다. 혼자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근데 혼자다. 그 혼자서 여러 명인 것이 니나 시몬의 음악에서 자주 느껴지는 것이다. 충분하다는 게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더 필요하지 않은 것. 이것으로 이미 다 있는 것.

니나 시몬이 이 곡을 부르게 된 배경을 찾아봤다. 그녀는 음악가이기 이전에 고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커티스 음악원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나중에 인종차별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뒤로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재즈와 블루스와 소울과 클래식이 섞인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 배경을 알고 나서 다시 들었다. 주문을 건다는 가사가 다르게 들렸다. 이건 연애 노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연애 노래이면서 동시에 다른 것이기도 한 노래.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내 자리에 있다. 그런 말처럼 들렸다. 그 해석이 맞는지는 모른다. 니나 시몬은 설명하지 않으니까.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세대를 건넌다. 1958년에 녹음된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 녹음이 남아 있다는 게 아니라 그 목소리가 지금도 말을 걸어온다는 것.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인다. 1958년에는 몰랐던 것들이 지금 들으면 보인다. 그녀가 무엇을 이기고 있었는지. 무엇에 맞서고 있었는지. 그것들이 목소리 안에 있었는데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들린다. 그런 음악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음악.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에서 토카르축의 ‘방랑자들’이 덮어도 끝나지 않는 책이라고 했는데 니나 시몬의 음악도 그렇다. 곡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목소리가 남는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에도 그 목소리의 질감이 공기 중에 있는 것 같다.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 니나 시몬의 목소리가 그렇다. 들었다는 것이 몸 어딘가에 남는다. 어디에 남는지는 모른다. 그냥 남는다.

이 곡을 여러 번 들었다. 들을 때마다 같은 부분에서 멈추게 된다. 곡 중반에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지는 부분이 있다. 거의 말하는 것처럼 낮아진다. 노래와 말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순간이 이 곡에서 제일 무서운 순간이다. 소리를 지를 때가 아니라 목소리가 가장 낮아질 때. 확신이 가장 클 때 목소리는 조용해진다. 그게 이 음악이 가르쳐주는 것 같다. 크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조용하게 말해도 된다. 조용할수록 더 잘 들린다.

이 곡 외에도 니나 시몬의 음악을 여러 곡 들었다. ‘Feeling Good’이 있다. ‘나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나는 자유롭다’로 시작하는 곡. 근데 이 곡도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자유롭다고 말하는데 그 자유로움이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목소리에 있다. 무언가를 통과하고 나서 자유롭다는 것. 처음부터 자유로웠던 게 아니라는 것. 그 차이가 목소리에 있다. 니나 시몬이 부르는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도착이다. 거기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이 목소리 안에 있다. ‘I Put a Spell on You’와 ‘Feeling Good’을 이어서 들으면 같은 사람이 부른다는 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 같다.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시간이 있다는 것. 그것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가 된다는 것.

니나 시몬은 1993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유가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면 나는 거의 자유롭다고. 거의. 그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지 않았다. 거의라고 했다. 그 거의 안에 뭐가 있는지. 어떤 두려움이 남아 있는지.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보다 더 오래 남는다. 이 곡도 그렇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목소리 안에 있다. 주문을 걸었다는 것 말고도 많은 것들이. 들을 때마다 조금씩 더 들린다. 아직 다 들은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