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재산이 있는 독신 남성은 반드시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풍자인지 진심인지 판단이 안 됐다. 두 번 읽어도 판단이 안 됐다. 나중에 알았다. 둘 다라는 게 이 소설의 방식이다. 진심처럼 쓰인 풍자. 풍자처럼 읽히는 진심. 오스틴은 그 경계를 한 번도 명확하게 나누지 않는다. 독자는 그 경계 위에서 계속 균형을 잡아야 한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처음 청혼하는 장면이 있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근데 동시에 그녀의 집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기 감정에 솔직한 건지 무례한 건지. 둘 다다. 다아시는 자기가 무례하다는 걸 모른다. 그게 오만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나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게 편견이다. 오스틴은 제목에서 이미 다 말했다. 근데 읽으면서 잊는다.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편을 들게 되는 순간이 온다. 엘리자베스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틀렸다는 걸 먼저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오스틴이 독자를 그쪽으로 데려간다. 모르는 사이에.
엘리자베스는 말이 빠르다. 생각하는 속도로 말한다. 다아시는 말이 느리다. 말하기 전에 오래 생각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그래서 항상 엇갈린다. 엘리자베스가 이미 결론을 냈을 때 다아시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처럼 보인다. 그 엇갈림이 오해를 만든다. 오해가 쌓이면 편견이 된다. 오스틴은 그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잘못 읽고 있는지를. 그러면서 독자도 잘못 읽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만든다. 말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를 쓰면서 멘델스존이 말을 뺀다고 했는데 오스틴은 반대다. 말을 넣는다. 넘치도록 넣는다. 근데 그 말들이 전부 진심은 아니다. 말이 많을수록 숨는 것들이 있다.
빙리와 제인은 단순하다. 서로 좋아하고 그걸 표현하고 결국 이어진다. 장애물이 없는 건 아닌데 두 사람 사이에는 오해가 없다. 빙리는 제인을 정확하게 읽는다. 제인도 빙리를 정확하게 읽는다. 그래서 이 커플이 소설에서 덜 흥미롭다. 정확하게 읽히는 관계는 이야기가 짧다. 잘못 읽히는 관계가 길어진다. 오스틴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가 거기 있는 것 같다. 서로를 가장 오래 잘못 읽는 두 사람. 그 오독의 시간이 이 소설의 시간이다.
다아시의 두 번째 편지가 있다. 엘리자베스가 첫 번째 청혼을 거절한 뒤에 쓴 편지. 거기서 다아시는 자기를 설명한다. 위클럼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 그 편지를 엘리자베스가 읽는 장면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인 것 같다. 편지를 읽으면서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틀렸다는 걸 안다. 근데 오스틴은 그 순간을 극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엘리자베스가 편지를 읽는다. 다시 읽는다. 그게 다다. 독자는 엘리자베스가 무너지는 걸 직접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더 오래 그 장면에 머문다. 그 시간은 지나갔다에서 왕가위가 카메라를 문틈 너머에 두는 것처럼 오스틴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한 발 물러선다.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 거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두 사람이 이어진다. 근데 오스틴의 해피엔딩은 이상하다. 기쁘지 않은 건 아닌데 뭔가 남는다. 다아시가 변했는가 엘리자베스가 변했는가. 둘 다 변했는가 아니면 서로를 더 정확하게 읽게 됐을 뿐인가. 오스틴은 여기서도 답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이어지는 장면을 보여주고 소설이 끝난다. 독자는 그 뒤를 모른다. 알 수 없다. 오만과 편견이 사라진 자리에 뭐가 남는지. 사랑이 남는다고 하면 너무 쉬운 답이고. 오스틴이라면 그 쉬운 답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이 끝나도 뭔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 이후의 시간이 어떻게 됐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