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bster 그는 정말 눈을 찔렀을까?



더 랍스터(The Lobster)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 / 레이첼 와이즈 / 레아 세이두 / 벤 위쇼 외

장르 멜로 / 로맨스 / 판타지

러닝타임 118분

개봉연도 2015년

수상 6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IMDb 7.1 / Rotten Tomatoes 87% / Letterboxd 3.8

더 랍스터 심층 해석 삭제 장면

혼자인 것은 죄가 된다. 영화 ‘더 로브스터’가 설계한 세계관에서 독신은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사유다. 시스템은 묻는다. 동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가짜 사랑이라도 연기할 것인가. 호텔에 모인 남녀들은 생존을 위해 공통점을 급조하고 취향을 조작한다. 코피를 자주 흘린다는 이유로 짝이 되고, 냉혈한인 척 연기하며 동반자를 얻는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도태되지 않기 위한 비겁한 계약서다.

호텔의 규칙은 명확하다. 서로 닮은 점이 있어야만 커플로 인정받는다. 이것은 현대인의 관계 맺기에 대한 지독한 야유다. 우리는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아를 거세하는가. 주인공 데이비드는 근시라는 공통점을 가진 여자를 만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를 준비를 한다.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다시 인간으로 남고 싶다는 비루한 생존 본능 때문이다. 시스템이 규정한 ‘정상성’에 편입되기 위해 스스로를 불구로 만드는 인간의 모습은 기괴함을 넘어 처량하다.

호텔을 탈출해 도착한 숲속의 ‘외톨이들’ 역시 대안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연애를 금지하고 오직 개인주의를 강요한다. 호텔이 강요된 결합이라면, 숲은 강요된 고립이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안과 밖, 양극단의 폭력 사이에서 인간은 갈기갈기 찢긴다. 사랑을 하지 않아도 죽고, 사랑을 해도 감시당하는 세계. 그것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결말에서 데이비드가 화장실로 들어가 스테이크 칼을 드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잔혹한 정점이다.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장님이 되어야 하는 모순. 그는 정말 눈을 찔렀을까. 영화는 대답 대신 식탁에 홀로 남겨진 여자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비춘다. 그 침묵은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타인과 같아지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가. 혹은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거짓을 연기하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로브스터다. 시스템이 정해놓은 유통기한 안에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공포가 되는 사회. 영화 속 인물들이 동물이 되어 숲으로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구원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 남기 위해 인간성을 버려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자격’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랍스터의 단단한 껍질 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오직 도망칠 곳 없는 고독과,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비겁한 시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