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킹덤(The Last Kingdom) Season 1
넷플릭스 오리지널
감독 닉 머피 외
각본 스티븐 버처드
원작 버나드 콘웰의 소설 ‘색슨 스토리 (The Saxon Stories)’
출연 알렉산더 드레이먼(우트레드) / 데이비드 도슨(알프레드) / 에밀리 콕스(브리다) / 루네 테미테(우바) 외
장르 역사 액션 드라마 / 대서사시
러닝타임 총 8부작 (각 60분 내외)
IMDb 8.5 / 로튼 토마토 91% / 레터박스 3.8

두 세계의 파편이 빚어낸 뒤틀린 탄생
오스버트에서 우트레드로, 다시 이방인으로
9세기 후반의 브리튼 섬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영국’이라는 질서 정연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였다. 그것은 차가운 북해의 파도와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진흙탕 위에서 엇갈리는 칼날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혼돈의 도가니였다. <라스트 킹덤> 시즌 1의 오프닝은 이 잔혹한 시대를 상징하는 노섬브리아의 해안가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오스버트’는 노섬브리아 영주의 차남으로 태어나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낼 운명이었으나, 북쪽에서 내려온 바이킹—데인족의 침공은 그의 삶을 뿌리째 뽑아버린다.
아버지가 전장에서 전사하고, 형마저 목숨을 잃자 소년은 가문의 이름인 ‘우트레드’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이 이름은 영광의 상징이 아닌, 빼앗긴 고향 베번버그를 향한 저주와 같은 이정표가 된다. 숙부 에드워드는 조카의 권리를 찬탈하고 그를 죽이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트레드를 살린 것은 아버지를 죽인 원수 라그나였다. 라그나는 소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야성을 발견하고, 그를 노예가 아닌 아들로 거둔다.
여기서 드라마는 정체성에 관한 아주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를 만든 것은 나를 낳은 혈연인가, 아니면 나를 먹이고 가르친 문화인가?” 우트레드는 데인족의 마을에서 자라며 색슨족의 억압적인 기독교 율법이 아닌, 북부인들의 자유분방하고 거친 생명력을 흡수한다. 그는 발할라를 꿈꾸고, 토르의 망치를 목에 걸며, 칼을 든 전사의 명예를 배운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베번버그의 파도 소리가 남아 있다. 시즌 1 초반부에서 묘사되는 라그나 가문의 몰살은 우트레드에게 두 번째 상실을 안긴다. 같은 데인족의 배신으로 양아버지를 잃은 그는, 이제 데인족에게는 ‘배신자의 자식’으로, 색슨족에게는 ‘야만인의 사냥개’로 불리는 철저한 경계인이 된다. 이 지독한 고독이야말로 우트레드라는 영웅이 딛고 선 토양이며, 그가 평생을 바쳐 싸워야 했던 진짜 적은 데인족도 색슨족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었다.
약한 육체에 갇힌 거대한 광기
알프레드가 설계한 ‘잉글랜드’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우트레드가 도망치듯 남쪽의 마지막 색슨 왕국 웨식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운명을 뒤흔들 또 다른 거인을 만난다. 바로 알프레드 왕이다. 배우 데이비드 도슨이 연기한 알프레드는 중세 역사 드라마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소름 끼치는 통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전장에서 적의 머리를 부수는 강력한 전사가 아니다. 그는 늘 만성적인 복통(크론병으로 추정)에 시달리며, 묽은 오트밀을 넘기지 못해 기침을 쏟아내는 병약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 나약한 육체 안에는 ‘하나의 신, 하나의 왕, 하나의 나라(Englaland)’라는 광기에 가까운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알프레드와 우트레드의 첫 만남은 시즌 1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다. 알프레드는 우트레드를 처음 본 순간 그의 유용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간파한다. 그는 우트레드의 무력과 데인족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나라를 지키려 하지만, 동시에 우트레드의 불경함과 이교도적 성정을 뼛속까지 혐오한다. 알프레드는 신의 이름으로 우트레드를 길들이려 한다. 그는 우트레드에게 세례를 강요하고, 그를 웨식스의 법 테두리 안에 가두기 위해 전략적인 결혼을 성사시킨다.
이 과정에서 묘사되는 알프레드의 정치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비열하다. 그는 우트레드가 가져온 승리의 공을 가로채 신의 은총으로 포장하고, 우트레드에게는 막대한 빚과 굴욕적인 복종만을 남긴다. 특히 알프레드가 우트레드를 교회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율법을 들이대는 장면들은, 문명이라는 이름의 시스템이 야생의 개인을 어떻게 거세하고 부품으로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메타포다. 우트레드는 알프레드를 위해 피를 흘리지만, 알프레드는 결코 우트레드를 자신의 형제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둘의 기묘하고도 위태로운 공생 관계는 시즌 1 전체를 관통하며,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이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인의 희생과 위선이 필요한지를 웅변한다.
진흙과 피로 버무려진 방패벽
에딩턴 전투가 보여준 중세 전쟁의 민낯
시즌 1의 대미를 장식하는 8화의 에딩턴 전투(Battle of Ethandun)는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사실적이고 참혹한 전투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대개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화려한 검술과 영웅적인 일대다 전투에 집중할 때, <라스트 킹덤>은 중세 전쟁의 본질인 ‘방패벽(Shield Wall)’에 집중한다. 방패벽은 단순히 방어 진형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숨소리와 땀 냄새를 공유하며, 공포를 함께 견뎌내는 인간 사슬이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진흙탕 위에 서 있는 색슨족 군대의 모습은 처절하다. 그들은 잘 훈련된 기사가 아니라, 밭을 갈다 끌려온 농민들과 부상당한 병사들의 집합체다. 반면 그들 앞의 데인족은 전쟁을 놀이처럼 즐기는 천생 전사들이다. 우트레드는 이 양쪽의 속성을 모두 이해하는 유일한 지휘관으로서 색슨족의 군대에 데인족의 독기를 불어넣는다. 방패와 방패가 맞부딪히는 순간 발생하는 둔탁한 소음, 방패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창날, 그리고 발밑에서 흐르는 이름 모를 동료의 피. 카메라는 이 혼돈의 한복판을 집요하게 비추며 시청자로 하여금 폐쇄공포증에 가까운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우트레드가 행하는 결정적인 도박—적의 방패벽 위를 날아올라 뒤편으로 침투하는 행위—은 단순한 액션 신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의 선언이다. 그는 색슨족의 방패 안에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벽을 깨고 나가는 포식자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 화려한 승리의 이면은 지독하게 비릿하다. 우트레드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레오프릭이 목숨을 잃는 장면은, 전쟁의 본질이 영광이 아닌 ‘남겨진 자들의 슬픔’임을 못 박는다. 레오프릭의 죽음은 우트레드가 잉글랜드라는 나라를 위해 바친 가장 비싼 제물이었으며, 이 상실을 기점으로 우트레드는 더 이상 천진난만한 전사가 아닌, 역사의 무게를 짊어진 어른으로 성장한다.
사랑조차 사치였던 시대의 여인들
이졸데의 희생과 브리다의 증오
시즌 1에서 우트레드의 삶을 지탱하거나 혹은 무너뜨린 여인들은 작품의 정서적 깊이를 층층이 쌓아 올린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브리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우트레드와 같은 색슨족 출신의 포로였지만, 우트레드보다 더 철저하게 데인족의 영혼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색슨족의 위선과 기독교의 억압을 혐오하며, 끝까지 야생의 자유를 추구한다. 우트레드가 알프레드에게 무릎을 꿇고 웨식스의 기사가 되기로 선택했을 때, 브리다가 느낀 배신감은 단순히 연인 사이의 감정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가 믿었던 가치’에 대한 배신이었다. 브리다는 우트레드의 과거이자, 그가 버려야 했던 ‘순수한 야성’의 상징이다.
반면 시즌 1 후반부를 장식하는 ‘그림자 여왕’ 이졸데는 우트레드에게 안식과 동시에 가혹한 예언을 선사한다. 그녀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졌으나 그 대가로 고독을 강요받은 존재다. 우트레드와 이졸데의 짧은 사랑은 이 드라마에서 드물게 아름답고 서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내지만, 그 끝은 지독하게 비극적이다. 이졸데는 알프레드의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하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우트레드가 알프레드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충성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졸데의 예지력을 앗아가고 그녀를 평범한 죽음으로 인도한다.
에딩턴 전투 직후, 데인족 전사 스코르파에 의해 이졸데의 목이 잘리는 장면은 시즌 1의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다. 우트레드가 그녀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울부짖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개인의 행복’은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이졸데의 죽음은 우트레드를 알프레드의 세계로 더 깊이 밀어 넣는 족쇄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고 홀로 남은 영웅의 고독은, 시청자로 하여금 승리의 쾌감 대신 형언할 수 없는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Destiny is All”
운명이라는 거대한 농담에 맞서는 한 사내의 외침
시즌 1의 여덟 에피소드를 모두 거치고 나면, 드라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우트레드의 나지막한 내레이션, “Destiny is All(Wyrd bið ful aræd)”이라는 문장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이 말은 처음에는 거역할 수 없는 신의 섭리에 굴복하는 체념처럼 들린다. 하지만 시즌 1의 우트레드가 겪은 온갖 배신과 고통, 상실을 목도한 우리에게 이 문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겠다’는 처절한 생존 의지의 발로로 읽힌다.
우트레드는 두 개의 세계에서 모두 버림받았다. 그는 색슨족의 법정에서 모욕당했고, 데인족의 전장에서 형제들을 죽여야 했다. 그는 베번버그를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났으나, 오히려 잉글랜드라는 나라의 주춧돌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이용하는 알프레드를 증오하면서도 존경하며, 자신을 배신한 세상을 향해 다시 칼을 뽑는다.
<라스트 킹덤> 시즌 1이 훌륭한 이유는 바로 이 ‘경계인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영웅은 고결한 동기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비루한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드라마는 끈질기게 보여준다. 진흙탕 속에 엎드려 알프레드의 발등에 입을 맞추던 우트레드의 굴욕은, 결국 에딩턴의 승리를 일궈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지독한 현실 정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시스템 안에서 소모되면서도, 자신만의 ‘베번버그’를 꿈꾸며 매일의 방패벽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운명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라스트 킹덤> 시즌 1은 단순히 중세 영국 역사를 재현한 영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을 빼앗긴 한 사내가 스스로의 이름을 증명하기 위해 피와 진흙 속을 구르는 장엄한 인간론이다. 만약 당신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가고 있다면, 9세기 영국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우트레드의 눈동자를 마주하라.
“운명은 모든 것”이라 말하지만, 정작 그 운명을 비웃듯 칼을 휘두르는 우트레드의 뒷모습에서 당신은 뜻밖의 위로를 얻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라는 거대한 제단에 바쳐진 그의 피는, 역설적으로 그를 영원히 죽지 않는 전설로 만들었다. 이제 넷플릭스를 켜고 이 위대한 서막의 목격자가 되어라. 당신의 가슴 속에서도 잠자고 있던 ‘우트레드’가 깨어나 베번버그를 향해 포효하기 시작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