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닦아주는 일


‘아무르(Amour)’

어머니가 아팠을 때 아버지는 매일 병원에 갔다. 특별히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갔다. 병실 의자에 앉아서 어머니가 자는 걸 보다가 저녁이 되면 집에 왔다. 그걸 몇 달 했다. 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거기 있어봤자 아무것도 안 바뀌는데. 나중에 어머니한테 물어봤더니 눈을 떴을 때 아버지가 거기 있으면 좋았다고 했다. 그게 다였다.

<아무르>를 보면서 그 생각이 났다.

조르주는 안느의 손을 매일 닦아준다. 닦아주고 나서 잠깐 그 손을 들여다본다. 카메라도 같이 들여다본다. 오래된 손이다. 두 사람이 같이 늙은 손. 하네케는 거기서 오래 머문다.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못 뗐는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슬퍼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이었는지.

하네케의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고정된 채로 그냥 거기 있다. 안느가 조금씩 말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물러서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그 거리가 차갑게 느껴졌다. 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너무 가까이 가면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떤 장면들은 거리가 있어야 보인다. 조르주가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이 그랬다. 안느가 옆에 있는데 혼자 먹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카메라가 멀리서 그걸 보고 있었다. 나도 멀리서 보고 있었다. 그 거리가 이상하게 편했다.

아무르 스틸컷

파리의 아파트는 책이 많다. 두 사람이 평생 모은 것들이 가득하다. 안느가 말을 잃어가는 동안 그 물건들은 그대로 있다. 책도 그대로고 피아노도 그대로고 벽에 걸린 그림도 그대로다. 물건들이 사람보다 오래 남는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실감했다. 실감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말을 모르겠다. 안느가 젊었을 때 피아노를 치는 영상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조르주가 그걸 보면서 잠깐 운다. 금방 멈춘다. 그 장면이 짧아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가 올리버를 기다리는 방식이랑 조르주가 안느 곁에 있는 방식은 다르다. 하나는 불투명한 사람 쪽으로 자꾸 걸어가는 것이고 하나는 이미 잘 아는 사람 곁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보고 나서 남는 감각은 비슷했다. 뭔가 가득 찬 것 같은데 말로는 안 되는 느낌.

조르주가 안느한테 어릴 때 피아노 선생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안느는 이미 여러 번 했을 것이다. 그래도 또 한다. 조르주는 듣는다. 그 장면이 짧은데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반복되는 이야기를 또 듣고 싶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겠지만. 조르주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느의 어떤 시간을 만나는 것 같았다. 자기가 없었던 시간. 자기가 알 수 없는 안느.

영화가 끝나는 방식이 갑작스럽다. 설명이 없다. 그냥 끝난다. 처음엔 뭔가 빠진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 어떤 끝은 설명이 없다. 그냥 그렇게 된다. 남은 사람이 그 공간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만 남는다.

아무르 스틸컷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별말은 안 했다. 뭐 먹었냐고 물어봤다. 아버지도 별말 안 했다. 먹었다고 했다. 끊었다. 왜 전화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거기 있어봤자 아무것도 안 바뀌는데 그냥 가는 것. 그게 어떤 건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조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