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정치는 없다’ 라스트 킹덤 시즌 2 결말과 우트레드의 비극적 서사 해석



라스트 킹덤 시즌 2 (The Last Kingdom Season 2)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Netflix Original Series)

감독 닉 머피 외

각본 스티븐 버처드

원작 버나드 콘웰의 소설 ‘색슨 스토리 (The Saxon Stories)’

출연 알렉산더 드레이먼(우트레드), 데이비드 도우슨(알프레드), 에밀리 콕스(브리다) 외

장르 역사 / 액션 / 드라마 / 대서사시

러닝타임 총 8부작 (각 60분 내외)

공개연도 2017년 (BBC/Netflix 공동 제작)

IMDb 8.5 / 로튼 토마토 91% / 레터박스 3.8

라스트 킹덤 시즌 2 우트레드


영웅 서사의 문법을 파괴하는 넷플릭스의 문제작


역사 드라마가 대중에게 주는 가장 큰 쾌감은 대개 ‘성장’과 ‘승리’에 있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주인공이 적을 물리치고 왕의 신임을 얻어 영웅으로 등극하는 과정, 우리는 그 전형적인 카타르시스에 익숙하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라스트 킹덤> 시즌 2는 이러한 보편적 문법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전편에서 웨섹스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우트레드에게 돌아온 것은 영광의 왕관이 아니라, 짐승처럼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젓는 노예선에서의 절망이다.

이 작품이 여타 역사물과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즌 2는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않는 냉혹한 중세의 시스템을 폭로한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거대 조직과 개인의 관계와도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본 글에서는 시즌 2의 핵심 사건인 노예선 에피소드와 알프레드 대왕의 통치술, 그리고 에델플레드의 각성을 통해 이 드라마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구스레드 왕의 배신과 노예선의 침묵


우트레드의 인간적 파멸


시즌 2 초반부의 가장 충격적인 전개는 구스레드 왕의 등장과 배신이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명분으로 노예에서 왕이 된 구스레드는 우트레드의 순수한 충성을 단칼에 배신한다. 우트레드는 자신의 고향을 되찾아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그를 도왔으나, 구스레드는 정치적 계산 끝에 우트레드를 노예선으로 팔아넘긴다.

노예선에서의 에피소드는 우트레드라는 캐릭터의 내면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재건하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화려한 검술도, 자부심 강한 외침도 통하지 않는 곳. 오직 노질과 채찍 소리만이 가득한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 우트레드는 자신의 운명(Wyrd)이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이 구간에서 알렉산더 드레이먼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눈빛에서 광기가 사라지고 오직 생존만을 갈구하는 짐승의 눈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영웅의 몰락’을 처절하게 체험하게 한다. 특히 그가 구출된 후, 자신의 동생과도 같은 할리그의 죽음을 마주하며 오열하는 장면은 <라스트 킹덤> 전 시즌을 통틀어 가장 인간적인 순간 중 하나다. 이 고통을 통해 우트레드는 비로소 깨닫는다. 운명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진흙 바닥에서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알프레드 대왕의 통찰


법과 십자가로 잉글랜드를 설계하다


우트레드가 육체적 고통을 겪는 동안, 알프레드 대왕은 정신적인 고립 속에서 잉글랜드를 설계한다. 시즌 2의 알프레드는 전편보다 훨씬 냉혹하고 치밀하다. 그는 자신의 병약한 육체를 신앙과 법치라는 강철 같은 의지로 지탱한다.

데이비드 도우슨이 연기하는 알프레드는 ‘위대한 왕’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는 의심이 많고, 편협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비전이 있다. ‘단 하나의 잉글랜드(Angelcynn)’. 그는 우트레드의 야만적인 힘을 혐오하면서도, 그 힘이 없으면 자신의 문명적 이상이 데인족의 도끼날에 산산조각 날 것임을 알고 있다.

시즌 2에서 두 사람의 대립은 ‘종교’라는 키워드를 통해 극대화된다. 알프레드는 우트레드를 기독교 체제 안으로 편입시키려 끊임없이 압박하고, 우트레드는 토르와 오딘의 의지를 고수하며 저항한다. 이 갈등은 단순히 신앙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개인’과 ‘국가라는 시스템’의 충돌이다. 알프레드는 법과 기록을 통해 역사를 쓰려 하고, 우트레드는 칼과 명예를 통해 전설을 쓰려 한다. 이 평행선 같은 가치관의 충돌이 <라스트 킹덤>을 단순한 전쟁 드라마 이상의 철학적 깊이를 가진 작품으로 만든다.


에델플레드의 각성


전사 여왕의 서막과 남성 중심 사회의 균열


시즌 2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알프레드의 딸, 에델플레드(밀리 브래디)의 등장과 성장이다. 그녀는 정치적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머물기를 거부한다. 무능하고 잔인한 남편 에델레드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 그리고 데인족에게 납치되는 수모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한다.

에델플레드는 우트레드의 거울 쌍둥이 같은 존재다. 그녀 역시 왕실의 품격과 전사의 강인함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한다. 우트레드가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벌이는 전투는 표면적으로는 영웅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억압받는 여성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즌 2 후반부, 그녀가 검을 들고 전장에 서는 모습은 잉글랜드의 미래가 단순히 남성 전사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선언한다. 그녀와 우트레드 사이의 미묘한 유대감은 로맨스를 넘어선, ‘투쟁하는 영혼들의 공명’으로 그려진다. 이는 <라스트 킹덤>이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패벽(Shield Wall)의 미학


9세기 전술의 생생한 재현


기술적인 측면에서 시즌 2는 액션의 밀도를 한층 높였다. 특히 ‘방패벽’ 전투의 묘사는 압도적이다. 화려한 와이어 액션이나 CG가 아닌, 사람과 사람이 방패를 맞대고 서로의 숨결과 땀 냄새를 느끼며 밀어붙이는 투박한 전투는 이 시리즈만의 전매특허다.

방패벽은 단순히 방어 전술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상징이다. 내 옆의 동료가 방패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벽은 무너지고 죽음이 찾아온다. 우트레드는 이 방패벽의 리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지휘관이다.

시즌 2의 대규모 전투들은 공간의 깊이감을 활용하여 전술의 흐름을 명확히 보여준다. 빔플레오트 전투나 마지막 룬던(런던) 탈환 작전에서 보여주는 전략적 긴장감은 시청자로 하여금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메라는 진흙 바닥에 구르는 병사들의 고통과, 그 위를 장식하는 차가운 칼날의 빛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폭력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비참함과 숭고함을 동시에 포착하는 연출이다.


베번버그는 여전히 멀고, 운명은 냉혹하다


시즌 2의 대단원은 런던을 되찾고 평화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트레드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고, 믿었던 동료들을 떠나보냈으며, 여전히 알프레드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있다.

그의 입버릇 같은 대사 “Destiny is All(운명은 모든 것이다)”은 이제 단순한 구호가 아닌, 처절한 체념이자 저항의 언어가 된다. 그는 베번버그를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길은 피와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다.

<라스트 킹덤> 시즌 2는 영웅이 완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영웅이 어떻게 부서지고 다시 조각되는지를 보여주는 가혹한 기록이다. 알프레드의 잉글랜드는 한 걸음 나아갔지만, 그 발걸음 밑에는 우트레드 같은 이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이 지독한 역설이 바로 우리가 이 시리즈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당신의 방패벽은 누구를 위해 서 있는가?


우트레드의 여정은 현대인의 삶과도 닮아 있다. 우리 역시 각자의 ‘베번버그(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세상이라는 ‘알프레드(시스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순응을 요구한다. 때로는 구스레드처럼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노예선 같은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트레드는 가르쳐준다. 운명이 모든 것일지라도,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시 칼을 잡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라스트 킹덤> 시즌 2는 9세기의 역사를 빌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꺾이지 않는 의지’에 대해 묻고 있다.


Insight


우트레드는 왜 베번버그가 아닌 웨섹스를 선택했는가

시즌 2 내내 우트레드의 목적지는 고향 베번버그였으나, 그의 발길은 결국 알프레드에게로 향한다. 이는 단순한 충성이 아닌 철저한 ‘정치적 실리’의 산물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정세 속에서 고립된 성 하나를 탈환하는 것보다, 웨섹스라는 거대 시스템의 핵심 전력이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고향을 되찾고 유지할 유일한 방책임을 깨달은 것이다. 전사가 전략가로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알프레드의 통치술, 가스라이팅인가 필연인가

알프레드가 우트레드에게 끊임없이 부채감을 심어주며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은 명백히 비정하다. 그러나 이는 분열된 왕국을 하나로 묶기 위한 ‘통치자의 필연적 선택’이기도 하다. 종교와 법이라는 명분으로 야생마 같은 개인을 통제하려 했던 알프레드의 고뇌는, 국가라는 거대 기구가 개인의 희생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Destiny is All’에 담긴 능동적 선언

우트레드의 입버릇인 이 문장은 숙명론에 대한 굴복이 아니다. 오히려 “내 앞에 닥친 시련이 무엇이든, 나는 내 칼로 그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능동적 선언에 가깝다. 노예선의 사슬조차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듯, 우리 각자가 마주한 가혹한 현실을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를 상징하는 이 작품의 철학적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