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우리: 가난이 갉아먹은 사랑, 그 유통기한에 관한 기록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감독 유약영

출연 정백연 / 주동우 / 톈좡좡

장르 드라마 / 멜로 / 로맨스

러닝타임 120분

개봉연도 2018

중국 내 역대 여성 감독 최고 흥행 기록

IMDb 7.4 / Rotten Tomatoes 100% / Letterboxd 4

OTT 넷플릭스

먼 훗날 우리


흑백의 현재와 컬러의 과거: 색을 잃어버린 상실의 미학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의 멱살을 잡고 차가운 눈밭으로 끌고 간다. 현재의 린젠칭과 팡샤오샤오는 흑백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연출적 기교가 아니다. 유약영 감독은 색채의 박탈을 통해 ‘상실’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물리적 실체로 증명한다. 영화 속 젠칭이 개발한 게임 ‘이언과 켈리’의 설정처럼, “이언이 켈리를 찾지 못하면 세상은 흑백이 된다”는 명제는 이들의 현실이 된다. 샤오샤오를 잃은 젠칭의 세계에서 빛은 더 이상 파장을 가지지 못한다. 흑백으로 투사되는 두 사람의 재회는 세련된 영상미를 넘어, 영혼의 한 조각을 도려낸 자들이 겪는 영구적인 결핍의 가시화다.

반면 10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난 베이징의 겨울은 시리도록 푸른 색감을 머금고 있다.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돈도, 집도, 미래도 없었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세상은 채도가 높았다. 감독은 이 극명한 대비를 통해 묻는다. 우리는 풍요를 얻는 대신 무엇을 제물로 바쳤는가. 젠칭과 샤오샤오가 나누던 낡은 소파와 좁은 고시원 방의 온기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흑백 사진 속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이것은 로맨스를 넘어 시간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색을 잃어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슬픈 보고서다.


베이징 드림의 민낯: 사랑을 삼켜버린 가난의 아가리


이 영화가 유독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난’을 다루는 방식이 지독하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갈라놓은 것은 제3자의 등장이 아니다. 그것은 매달 돌아오는 집세와 지하철역에서 파는 불법 복제 CD, 그리고 쓰레기장에 버려진 낡은 소파다. 사랑만으로 허기를 채울 수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영화는 캔버스 위에 타설한다. 젠칭이 PC방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자존감을 갉아먹을 때, 사랑은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처치 곤란한 짐이 된다.

가난은 인간의 인내심을 닳게 만든다. 젠칭은 성공해야만 샤오샤오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샤오샤오가 원했던 것은 그 가난한 자취방에서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베이징이라는 거대 도시는 청춘의 꿈을 먹고 자란다. 젠칭과 샤오샤오는 그 도시가 뱉어낸 고독의 배설물에 불과했다. 젠칭은 성공이 사랑을 완성할 것이라 착각했으나, 성공의 문턱에 도달했을 때 곁에 남은 것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성취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서늘한 배신이다.


지하철의 문: 타지 못한 차와 돌아갈 수 없는 길


영화에서 가장 처절한 순간은 이별의 지하철 장면이다. 가난과 다툼에 지친 샤오샤오가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때, 젠칭은 그녀를 따라 승강장까지 달려온다. 하지만 그는 열차에 타지 않는다. 닫히는 지하철 문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한다. 젠칭은 열차 안의 샤오샤오를 보지만, 그 문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한다. 이 짧은 정지는 두 사람의 인생이 영원히 평행선으로 갈라지는 물리적 선언이다.

젠칭이 열차에 타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망설임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비참함에 대한 자각이자, 사랑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가난의 벽을 목격한 공포다. 샤오샤오는 무표정하게 떠나가고, 젠칭은 남겨진다. 훗날 젠칭은 성공한 뒤 “만약 그때 내가 지하철에 탔다면?”이라고 묻지만, 샤오샤오의 대답은 차갑다. “그랬다면 넌 지금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거야.” 성공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시대의 비극이 그 지하철 문 사이에 박제되어 있다.


“I miss you” 놓쳐버린 시간과 사무치는 가정(if)


10년 후, 폭설로 고립된 호텔 방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의 해부실이다. “만약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가 끝까지 버텼다면?” 수많은 ‘만약’이 쏟아지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랬다면 우리는 진작에 헤어졌겠지”라는 자각이다. 젠칭의 “I miss you”는 단순히 보고 싶다는 의미를 넘어, “내가 너를 놓쳤다(miss)”는 통한의 고백이다.

우리는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연인과 함께했던 ‘꿈꾸던 나’를 그리워한다. 젠칭에게 샤오샤오는 자신의 청춘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증거물이다. 이제 그는 번듯한 아파트와 가족을 가진 성공한 중년이 되었고, 샤오샤오는 여전히 부유하는 국외자다. 그들의 재회는 치유가 아니라 확인 사살이다. 우리가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이미 우리 사이의 강물은 너무 멀리 흘러갔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젠칭의 아버지: 낡은 세월이 보내는 마지막 위로


젠칭의 아버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하고도 슬픈 지점이다. 그는 변해가는 베이징과 달리 늘 그자리에 머물며 찐빵을 찌고 편지를 쓴다. 아버지는 젠칭이 데려온 여자들이 샤오샤오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눈이 멀어가면서도 샤오샤오의 체취와 목소리를 기억한다.

아버지가 샤오샤오에게 남긴 편지는 이 비극의 마침표를 찍는다. “인연이란 게 끝까지 가긴 힘들더구나. 하지만 서로 잘 지내면 그걸로 된 거다.” 아버지는 안다. 집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젠칭이 성공해서 큰 집을 샀을 때, 아버지는 그곳에 적응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젠칭의 성공이 아니라, 젠칭과 샤오샤오가 함께 찐빵을 먹던 그 비좁지만 따뜻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훗날의 우리는 모두에게 미안하다


영화의 마지막, 젠칭이 게임을 완성하고 세상이 다시 색을 찾으며 현실의 젠칭과 샤오샤오도 각자의 길로 떠난다. 이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각자의 삶이라는 궤도에 순응하기로 한 서글픈 타협이다. <먼 훗날 우리>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청춘들의 보편적인 상처를 건드렸다. 젠칭의 성장이 샤오샤오라는 희생을 제물로 삼았다는 사실은, 남겨진 자들에게 지독한 죄책감을 선사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젠칭이었고, 누군가의 샤오샤오였다. 이 영화는 당신이 과거에 묻어두었던 그 비릿한 이별의 냄새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가난해서 미안했고, 변해서 미안했으며, 결국 끝까지 곁에 있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 모든 사과가 눈 덮인 베이징의 하늘 위로 흩어진다. 훗날의 우리는 부유해졌을지 모르나, 그때 그 방안의 온기를 다시는 재현할 수 없다.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타이밍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그 가난을 견뎌낼 실력, 변해가는 자신을 붙잡을 실력. 젠칭과 샤오샤오는 그 실력이 부족했기에 흑백의 세상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의 흑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