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뷔페] 직선의 단식, 캔버스에 박제된 전후의 허기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출생 프랑스 파리 / 1928년 7월 10일

사망 1999년 10월 4일

직업 화가 / 판화가 / 삽화가 / 데생화가

사조 미제라블리즘(Miserabilisme, 비참주의)

베르나르 뷔페 Bernard Buffet 항구 풍경화 직선의 미학


겹침 없는 선, 감정의 골조를 드러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것은 승리가 아니라 거대한 공동(空洞)이었다. 1940년대 말, 파리의 예술계는 추상주의의 화려한 색채 놀이에 빠져 있었으나 베르나르 뷔페는 그 유행을 거부했다. 그는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붓을 든 것이 아니라, 구멍의 경계를 더 날카롭게 긋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의 회화에서 가장 먼저 목격되는 것은 병적인 직선이다. 곡선이 허용하는 위로와 유연함은 그의 캔버스에서 추방당했다. 뷔페의 선은 살점을 도려내고 남은 뼈대이며,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자의 신경질적인 자아다.

전후 프랑스의 황량한 풍경은 뷔페의 검은 선을 통해 박제된다. 그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처한 고립을 선언한다. 그의 정물화 속 생선은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메마른 접시 위에서 화석화된 죽음의 상징이다. 꽃병의 꽃들조차 생명력을 잃고 가시처럼 돋아나 관람자의 시선을 찌른다. 뷔페는 풍요를 조롱한다. 전후 유럽이 겪었던 물리적 배고픔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실존적 허기를 그는 무채색의 물감으로 타설했다. 그의 회화는 색채의 잔치가 아니라 색채의 단식이다. 물감은 얇게 펴 발라져 캔버스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노출한다. 그 메마른 표면 위로 그어진 검은 선들은 마치 수술 뒤에 남겨진 흉측한 봉합 자국처럼 보인다.


삐쩍 마른 인간,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육체


뷔페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아 상태다. 길게 늘어난 얼굴, 움푹 패인 눈덩이, 가시 돋친 듯한 손가락.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의 형상을 한 유령에 가깝다. 뷔페는 인간의 육체에서 지방과 근육을 거세하고 오직 고통에 반응하는 신경망만을 남겨두었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타자와의 연결이 끊어진 인간, 즉 ‘타자라는 지옥’에 갇힌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샤르트르의 실존주의가 텍스트로 존재했다면, 뷔페의 회화는 그 실존의 고통을 시각적인 비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의 자화상을 보라. 뷔페 자신의 얼굴은 신경쇠약에 걸린 도시의 초상이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허공을 응시하며, 입술은 굳게 닫혀 소통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 배경에 칠해진 거친 회색조의 터치는 그를 감싸는 공기조차 날카로운 파편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가장 정교한 비극의 소품으로 박제했다. 뷔페에게 인간이란 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의미 없는 우주에 내던져진 채 서서히 말라가는 가느다란 선들에 불과했다. 이 깡마른 신체들은 전후의 궁핍한 시대상을 넘어, 풍요 속에서도 여전히 고독한 현대인의 내면을 선험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화려한 몰락, 대중의 찬사와 평단의 저주


뷔페는 20대에 이미 전 세계적인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대중은 그의 서늘한 냉소에 열광했다. 그것은 전쟁을 겪은 세대가 공유하던 공통의 상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누린 물질적 풍요는 도리어 그의 예술적 진실성을 의심받는 단초가 되었다. 뷔페가 성처럼 큰 집에서 살며 롤스로이스를 타기 시작하자, 비평가들은 그의 ‘우울’을 기만으로 치유되었다고 선언했다. 추상 회화가 주류가 된 미술계에서 그의 구상 회화는 낡은 유물 취급을 받았다.

평단은 그를 배신했고, 그는 화단의 외톨이가 되었다. 그러나 뷔페의 진실은 그의 삶이 아니라 그의 끝에 있었다. 그는 평생을 괴롭힌 파킨슨병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상징인 ‘직선’을 그을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붓을 든 손이 떨리는 순간, 그의 세계는 무너졌다. 그에게 직선은 곧 생존이었고, 선이 흔들리는 것은 존재의 붕괴를 의미했다. 비평가들의 조롱 속에서도 그는 죽는 순간까지 검은 선을 멈추지 않았다. 1999년, 그가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고 스스로 숨을 끊었을 때, 그것은 자신의 회화가 단순한 연출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획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제물로 바친 순교자였다.


박제된 광대와 죽음의 무도


뷔페의 후기작에 자주 등장하는 광대 시리즈는 그의 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화려한 분장을 하고 있지만 눈에는 깊은 고립감이 고여 있는 광대. 이는 대중의 환호 속에서 서서히 잊히고 부정당하던 뷔페 자신의 투영이다. 광대의 옷에 그려진 체크무늬조차 그는 감옥의 창살처럼 날카롭게 그어버렸다. 웃음은 거세되고 가학적인 미학만이 남은 무대. 뷔페는 광대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연극이 얼마나 추악하고 허무한지를 폭로한다. 붉은 화장 뒤에 숨겨진 창백한 안색은 현대인이 쓰고 있는 사회적 가면의 이면이다.

그가 생의 마지막에 매달린 주제는 ‘죽음’이었다. 해골들이 춤을 추고, 앙상한 뼈마디가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그것은 공포라기보다 순수한 본질로의 회귀다. 살점이라는 가식적인 포장지를 다 벗겨냈을 때 남는 진실. 뷔페는 평생 그 진실을 추적했고, 결국 자신이 그린 해골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의 회화는 현대 미술의 난해한 개념 놀이를 거부한다. 대신 눈에 보이는 고통, 만져지는 고독, 냄새나는 허무를 직접적으로 타설한다. 뷔페의 전시는 즐거운 관람이 아니다. 그것은 예리한 메스로 자신의 내면을 해부당하는 서늘한 체험이다. 직선의 단식 끝에 남은 그 앙상한 진실이 지금 당신의 시선을 찌르고 있다.